최근 ‘자존감’이 화두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낮은 자존감’에 대한 자각이 강해졌다. 오프라인 모임에서든, 온라인에서든 ‘자존감’이라는 용어가 수시로 등장한다. 주로 ‘자존감 바닥’이 눈에 띄고 ‘자존감 마이너스’라는 표현까지 보인다. 보면 자존감은 객관적 조건과는 비례하지 않는다. 일류대학을 나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위치에 있다고 자존감이 높은 것이 아니다.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못난 사람은 못난 대로 자존감이 낮은 이들이 많다. 누가 봐도 남부러울 것 없는 조건을 갖췄음에도 ‘왜 나만 불행할까?’라는 생각을 습관처럼 안고 사는 이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사실 ‘자존감’은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심리학에서 자존감은 기본이 되는 개념으로 ‘정신건강의 척도’다. 자존감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복잡다단하다. 우선 자존감 형성에는 성장과정에서 부모의 양육태도가 절대적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시대·사회적 요인도 크다고 입을 모은다. 먹고살기 힘들 때에는 자존감에 관심을 둘 여력이 없지만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 관심의 대상이 바깥에서 내부로 향하게 된다고 한다. 어떤 면에서 전체주의적 교육을 받은 6070세대는 자존감에 대한 인식이 희박하다. 동조주의가 강한 6070세대는 개성을 추구하는 경우가 오히려 드물다. 자존감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긍정적인 지표다. 개성과 다양성을 가진 개인의 출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자존감 문제는 한국의 교육현실과 떼어 놓고 보기 어렵다. 자존감은 인정과 지지, 존중과 칭찬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남과의 비교, 상대적 박탈감이 일상화된 교육현장에서는 잘하는 것을 칭찬해주고 지지해주기보다 못하는 것을 부각해 혼내는 경우가 많다. 자연히 자존감은 추락한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충분히 지지와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는 정서적 허기감이 생긴다. 이런 아이는 99가지에 능하고 1가지에 서툴면 그 한 가지 때문에 자기비하를 하게 된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왜 나는 이것밖에 안 될까?’ ‘나는 왜 그걸 못할까?’ ‘더 노력해야 해’라며 자신을 달달 볶게 된다. 성취를 해도 만족하지 못하고 늘 자신이 부족하다고 여긴다. 이런 아이들은 성장과정에서 게임중독, 도박중독, 알코올중독 등 행동중독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스트레스에 취약하고 자기조절력이 떨어진다고 한다. 결정장애가 늘어나는 것도 자존감 결핍과 맞물려 있다. 결정이란 자존감 있는 삶의 방식이자 실천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자존감은 개별적인 문제인 동시에 사회적 문제다. 2%대의 낮은 경제성장률, 10%대의 높은 실업률, 개별화·파편화된 삶, 사랑 잃은 경쟁의 시대를 뚫고 가야 하는 세대에게 자존감 상실은 피하기 힘든 유행병이다. 치유가 힘든 중병(重病)임에는 틀림없지만 치유가 불가능하지는 않다. 전문가들은 안팎의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스스로는 시선을 내부로 돌려 진짜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려는 노력을, 밖에서는 “네가 뭐가 못나서” “뭐가 부족해서”라는 조언은 피하라고 한다. ‘지금 그대로도 괜찮아’라는 뻔한 위로가 필요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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